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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육아 이야기

다행이고 다행이었던 날

#1. 후회의 시작

어제 '23.06.25(일) 오후 목욕을 다녀온 후부터 아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 서혜부(음경위의 돌출된 삼각형 부분의 끝부분) 근처가 아프다고 그랬다. 그래서 혹시나 몰라서 자주 위로 올라갔었던 좌측 고환을 만져보니 만져지지 않았다. 나는 오른쪽 음경이 하부가 쪼이는 바지를 입으면 자주 올라와서 내려주곤 해서, 혹시 그런 현상이지 않나 싶어서 위에서 아래로 마사지를 해줄려고 했는데, 아들이 매우 아파했다. (여기서 바로 응급실로 갔었어야 했다.) 잠복고환 또는 활주고환, 견축고환 증상이 원래 있어서 따뜻한 물에 좀 있어보았는데도 전혀 진척이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서 일단 긴급 대응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일인 월요일에 병원 외래 진료를 가보기로 했다. 밤 10시경 재울 때가 되어서 확인해봐도 상태는 동일... 그래서 더더욱 나와 아내의 걱정은 깊어져갔다. 일단 내일 아침 9시 서면에 위치한 주종수 외과의원에 가보기로.

서혜부 위치

 

#2. 해결될 듯 보였으나, 급박해진 전개

주종수 외과의원의 첫째 아들인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보았다. 초음파 진료를 보았는데, 잠복/활주 고환 등의 증상이면 서혜부 근처 부위에 약간의 자극만 주어도 아프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러시더니 갑자기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로 가보라고 하셨다!! 아... 뭔가 잘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응급실이라니! 고환 염전(testicual torsion, 고환 꼬임) 증상이 의심된다고 하셨다. 어제 밤에 찾아볼 때 고환 염전도 생각해보았는데, 고환이 꼬이면 그 즉시 응급실을 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아프고, 고환이 붓고 참을 수 없는 통증, 구토가 유발된다고 하는데 아들은 그렇지 않아서 제외시켰었다. 하지만...의사 선생님께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는데, 고환의 꼬임이 심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으며, 고환이 꼬일경우 피가 고환에 공급되지 않으면 6~8시간 내에 조치가 되지 않으면 괴사하고 적출될 수 있다는 무서운 얘기까지...하셨다. 이때 정말 아차!싶었고 절망적이었다. 어제 아들이 아팠을 때 고환이 만져지지 않았음을 확인했을 때 바로 가볼걸! 후회가 막심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의사 선생님께서 써주신 장문의 소견서를 가지고 친절히 읽어주신 당부를 잊지 않고 양부대 응급실로 접수했다!

 

#3. 양산 부산대 병원 응급실 접수 및 수술

갑자기 응급실로 가게된 아들은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코로나 관련으로 응급실은 보호자 1인만 동행이 가능. 일단 빠르게 접수 후 응급실로 아내와 아들은 들어갔다. 초음파를 2번 했는데 첫번째에는 고환이 꼬여있는지 정확히 확인이 어려워 두번째는 조영제를 투여후 초음파 검사를 시도하였으나, 아들이 힘들어해서 결국 실패하였다. 영상의학과 의사 선생님은 일단 아주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환 꼬임이 의심된다고 하였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아들이 유아일 때 영유아 건강검진 때 의사 선생님이 활주고환이 의심된다고 하여 양산부산대 병원의 모 교수님을 몇차례 방문해서 진료를 보았다. 아들이 추울 때 왼쪽 고환이 가끔 올라가서 잘 안잡히는 경우가 있긴해서 갔었던 것인데, 마침 갈때마다 잘 내려와서 그랬던 건지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고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번에 영상의학과 선생님은 아들이 잠복고환이 맞다고 하시면서 그 선생님께서 왜 그러셨는지 좀 의아해하셨다. (교훈은 역시 꾸준한 관찰과 여러 병원을 다니며 진료를 봐야한다는 것...) 다시 아내와 아들은 응급실로 들어가더니 수술을 바로 해야한다고 수술동의서를 내게 쓰라고 했다. 응급실의 무한 대기 중에 갑작스레 수술이 진행된 것이다. 

#4. 수술 동의서, 보호자의 책임, 두려움, 미안함

수술 동의서를 쓰러, 응급실 의사선생님께 여러 설명을 들었다. 직전에 고환염전 정보와 수술 후기를 읽은 터라, 잘 이해가 되었지만, 의사선생님께 직접 그말을 들었을 때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고환 염전은 빠른 조치가 필요한데 어제 발생한 터라,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라 늦었을 수도 있다. 늦을 경우 고환 괴사, 적출, 인공고환 삽입, 반대편 고환 고정 수술 등의 설명들... 아빠로서 정말 미안했다. 이런 특성을 유전시켜준 것,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후회, 미안함... 그래도 일단은 동의 서명을 완료하고 수술 대기실로 갔다. 대기실 모니터에 표시되는 아들의 "수술중"표시, 이 순간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기도. 기도. 기도. 곧이어 아내를 만났는데, 나를 보자마자 흐느껴 울었다. 마취되기 직전까지 엄마 무섭다고 울었다며,,, 여기서 내가 울면 안된다. 나라도 정신 차리고 있어야지. 아내를 다독이며, 일단 정신차리고 얘기를 나눴다. 13시 35분에 수술실로 들어갔고, 1시간 ~ 1시간 30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아까 수술 설명을 들을 때 의사선생님이 고환에 피가 공급되지 않았을 때, 고환의 꼬임을 푼다음 30분 정도 기다려서 다시 돌아오는지 본다고 했다. 1시간이면 나는 수술이 잘되었을 것이고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1시간 30분이 걸렸다면 그 반대의 경우겠지. 일단 입원에 대비한 생필품 등을 챙기러 부랴부랴 집으로 갔다. 사실 오늘 하루종일 두통에 피로감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허기짐에 너무 컨디션이 안좋은 상태였다. 짐을 챙기고 나오던 무렵인 2시 30분경, 아내의 연락이 왔다. "아들 나왔대, 가볼게!"라고. 여기서 나는 순간 수술이 잘되었구나 생각했다. 곧이어 오는 카톡의 내용에는 다행히 고환의 꼬임이 심하지 않아서 잘 풀고 양측 고환 모두 음낭 아래에 고정시키는 수술까지 잘 마무리 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 정말 모든 것이 다 풀렸다. 아침일찍 가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다행이고, 빨리 응급실로 와서 다행이고, 빨리 수술이 되서 다행이고, 수술이 잘 되어서 다행이었다. 수술 전에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을 때는 정말 절망적이었는데, 이번에는 기쁨과 함께 연락을 드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걱정하고 기도하고 계셨다. 

 

#5 이겨낸 아들에게 감사, 지켜준 아내에게 감사

수술 후에 아들은 애착 베개(부엉이)부터 찾았다. 모든 것이 힘들 때 애착 인형부터 찾다니, 아직 어린이 맞나보다. 아무튼 많이 울었답지만 무사히 이겨내고 병실에 있다는 아들 소식을 들으니 정말 대견했다. 나도 해보지 않은 수술을 잘 해내다니. 밤이 되어 아빠를 찾는 아들의 모습에 아내는 부럽다고 한다. 나름 아빠로서 열심히 노력한다고 했는데, 더 잘할께 아들아.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 하자. 모든게 감사하고, 다행이고, 운이 좋았던 하루였다.